아버지가 술이 취해서 들어오시는 날은
일찍 자는 게 상책이었다(^^)
아버지가 술이 취하시면 하시는 버릇은 우리 남매를 다 불러 앉혀놓고 잔소리를 하신다.
"사람이 먹기 위해 사는가, 살기 위해 먹는가 한번 답해보라고..."
"....."
"왜 대답이 없냐고"
"....."
어릴 때부터 들은 그 소리는 너무도 싫은 철학적 질문이었다.
반발심이 많은 십대 때는
아버지의 그 말에 반박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엄하신 아버지 앞에 감히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렇게 물어주신 덕분에
나는 "사유하는" 인간이 빨리 되었는지 모르겠다.
중 고등학교 시절,
윤리시간에 중세철학자들의 사조를 배울 때
어릴 적 아버지가 그렇게 논리를 전개하시던 그 질문을 선생님이 물어오지 않는가.
당연히 우린
살기 위해 먹는다.
먹기 위해 분주히 사는 것 같아도
실상은 살기 위해서 먹고,
먹으려고 하니까 부지런을 떨 수 밖에 없는 거다.
그러나 개중에는
"진수성찬"이라든지 "의미있는 자리에서의 식사"라든지
진짜로 "먹는 것"에 초점을 두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이렇게 비판하는 나도
가끔씩
현실적으로 그런 철학적 질문을 잊은 채 "먹는 것"에 집착하는 저 무리들 속에 속하곤 한다.
먹지 않으면 배가 고프고 배가 고프면 일을 하는 데 지장을 초래하고 일이 안 되면 일자리를 잃거나 수입의 감소를 야기하고 그러면 다시 먹을 것이 부족해지고 그래서 먹을 것을 위해서 일을 해야 하는 악순환이 생길 수 있다.
그래서 "먹어야 하느니라"는 명제는 정당성을 확보하고도 남는다.
하지만 인간이 "먹기 위해" 존재한다는 명제엔 결코 동의하고 싶지 않다.
냉장고에 묵은 김치 조금이 남아 있었다.
인간이 얼마나 게을러질 수 있냐면
지하주차장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곧장 올라오지 않고
1층에서 내려 5미터 정도 거리에 슈퍼가 있는데
매일 그냥 올라왔다.
슈퍼에 들러 김치찌개용 참지캔 하나만 사면
그 묵은 김치를 해결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오늘은 업무처리로 바빠 늦게 퇴근했음에도 불구하고
꼭
반드시
기어코
슈퍼에 들르리란 각오를 단단히 하고(^^)
참치캔을 사 가지고 올라와
쌀을 씻어 밥을 하고
묵은 김치에 참치캔을 따 넣고 참기름 한방울을 떨어뜨린 찌개를
얼큰하게 끓인 후 후딱 먹어치웠다(^^)
이것 안 먹고 잔다고 내 생명에 지장은 없다.
그러나
뭔가 미루고 있던 일 하나를 해치웠더니
맘이 홀가분하다.
오늘 난
먹었다.
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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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기 위해 사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