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생긴 삼촌의 육아일기

1994/07

92.12.22.생. 그러니까 이제 겨우 19개월짜리 아기가 있다. 다름 아닌 내 조카 나현이다. 누나가 시집가 쌍동이를 낳았고 여건상 시집에서 큰 애를, 친정에서 작은 애를 기르게 되었다. 손바닥만한 갓난 아기 때부터 지금 나의 앉은 키에 육박한 크기로 자랄 때까지 온 가족의 귀여움과 주목을 한 몸에 받아오며 날로날로 커가는 나현이를 19개월간 지켜보며, 마치 내 아이를 낳아 기르고 있다는 생각까지 한다면 너무 심한 착각일까(?)

물론, 나현이를 기르고 있는 몫으론 이모님의 정성을 따라가지 못한다. 젓병 데우고 기저귀 갈아주고, 빨래하고, 업어주고, 먹이고, 입히고,.... 걸음마가 시작된 무렵부터는 어디서 넘어지지는 않을까 하는 조바심에 한 몸처럼 이곳저곳을 따라 다녀야 하는 그 수고를 내가 감히 흉내내지도 못한다. 나와 잘 놀다가도 잠이 오면 꼭 이모님을 찾아 울고부는 나현이를 보면 육아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님을 인정한다.

그런데, 이제 며칠 후면 당분간 못보게 될 처지다. 누나가 매형이 있는 울산에 가서 방학동안만이라도 단란한 가정생활을 하겠다고 하니까. 진작부터 있는 말이지만, 막상 나현이가 없을 집안을 생각하니 삭막해진다. 다들 장성한 터라 가족간의 대화채널이 많지 않았었는데, 나현이를 통해 온 가족이 하나가 되어 왔었기 때문이다. 모두들 나현이를 위해 사는 듯이 편의를 봐준다. 실례로 잠꾸러기인 나도 나현이가 깨어 울면 벌떡 일어나야 했고, 곤히 자는 내 얼굴을 비비고 오면 눈을 뜨지 않을 수 없었다. 어제 QT세미나에서 강사 목사님이 하나님과의 교제를 사랑하는 사람과 나누듯이 하라고 하셨는데, 나현이를 사랑하는 나의 모습을 보며 하나님이 이처럼 나를 사랑하고 계심을 느끼고 있다. 나현이가 넘어져 울 때는 다친 부위를 호호 불어주고 뭔가 마음에 안 들어 계속 울 때는 주의를 끌기 위해 신기한 물건 쥐어 주려고 이 서랍, 저 서랍 뒤적이는 내 모습을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요즘은 나현이가 몇마디 말을 하고 알아듣기도 한다. 그 말이래야 엄마, 할머니,--빠(아빠 발음이 잘 안됨) 정도일 뿐이다. 삼촌이란 소리를 들으려면 좀 더 커야 하지만, '삼--'이라고 까진 한다. 출근할 때 손 흔들며 '안뇽'이라고 하고, 퇴근할 때 교회 앞에서 30m떨어진 우리 집에서 노는 나현이를 부르면 내 목소리를 알아 듣고 뒤뚱거리면서도 쏜살같이 뛰어내려온다.

아! 이 행복함! 내 자식이 아닌데도 이 정도인지라 '나중에 결혼해 제 아이 낳으면 더 심할 그 꼴을 어떻게 봐 주냐'는 핀잔도 들을 정도다.

얼마간 못 본 뒤에 곧 해후하겠지만, 그 동안의 공작(?)을 계속 못해 아쉽다. 뭐냐면, 태어난 이후 거의 매일 하루에 열번 이상 들려 준 말 '진우 삼촌은 잘 생긴 삼촌이다.' 나의 이 유머스러운 행동에 아이가 커서 잘 생긴 남자의 기준을 나에게 두면 안 된다는 등의 시샘의 소리를 듣긴 하지만, 요새 그 열매를 보고 있다.

아침에 나현이를 보고 물으면 답한다. "삼촌 잘 생겼어요?" "네,네." 어떤 날은 너무 자주 물으니까 신경질이 나는지 '네,네,네,네.'하고 그만 두기도 하지만.(요놈 봐라!)

10kg이 넘은 체중으로 여름에 일하느라 힘드신 이모님한테 업히려 하고, 밖에 나가려고 보챌 때면 때려 주고 싶고, 버릇 고쳐줘야 한다고 벼르다가도 나를 향해 방긋 웃는 모습에 언제 그랬냐 잊고 만다.

구약성경을 읽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의 밥 먹 듯한 변덕--하나님을 섬기다가 배신하고 다시 순종하고--에 진짜 열 받으며 어떤 때는 하나님이 너무 참으신다고 생각한 때가 있었는데, 나현이의 그런 모습에 대한 나의 사랑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간접 체험하고 있어 감사할 뿐이다. 그리고 나의 모습을 동일하게 보고 계신 하나님의 입장을 생각하고 고개를 숙이게 된다.

결혼해 자식을 낳아보면 부모님의 심정을 알게 된다고 하는데, 아직 미혼이고, 더더욱 아기도 없는 내가 이런 행복함을 경험한다는 것이 굉장한 은혜가 아닐까.

결혼 몇 년만에 보금자리를 찾은 누나와 매형 내외에게 감사하고프다. 친 딸 같은 조카를 우리 집에서 키울 수 있게 해서.  내친 김에 그냥 조카 달라고 하고프지만..... 하나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