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꺾어 차려고는 했는데 빗맞았습니다. 운좋게 들어간 것 같습니다"
월드컵 D-100일을 앞두고 눈발이 내리는 상암 월드컵경기장에서 결승골을 넣은 박주영 선수의 인터뷰 한마디다. 방송3사의 해설자를 비롯해 이어지는 뉴스에서 기자들도 칭찬일변도의 찬사를 늘어놓았는데 정작 공을 찬 박주영 선수는 이렇게 고백한다.
더 많은 골을 넣을 수 있는 경기였는데도 결국 1골밖에 넣지 못한 경기.
과정과 결과.
둘만 놓고 윤리 토론을 하면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을 한다. 시험에 떨어졌어도 최선을 다했으면 되었다고 위로하는 것이 어른스러운 표현이듯이, 결과는 과정의 산물로서 얘기하는 것이 도덕적이다. 스포츠에서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승리하는 것이 우선임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비열한 수단으로 승리를 걸머쥐었을 때의 씁쓸함은 그 영광이 결코 오래가지 않음을 증명하는 셈이기에 역시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요시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언급한 과정은 더티플레이를 하지 않고 페어플레이를 했다는 점에서 보는 과정이지, 빗맞은 공이 운 좋게 골대 안으로 들어갔다거나, 상대팀의 어이 없는 자살골로 이긴 것까지 뭐라하는 것은 아니다. 박주영은 한 골을 넣고 후반 교체되었다. 계속 보면서 저러다 이 골이 결승골로 끝나면 경기후의 네티즌판세가 참 흥미롭겠네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역시..그렇다.
중학교 때 약간 잘난 체 하는 급우가 있었다. 공부도 잘해서 선생님들의 주목을 받던 이 친구. 그러다보니 왕따문화가 없던 시절이지만 주변 몇 명외에는 친구가 적은 편이다. 그 친구와 나눈 얘기가 문득 떠오른다. 나도 좋아하는 야구를 그 친구도 좋아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야구 선수 중에 자기는 매타석 안타를 치는 선수보다는 주자가 있을 때 안타를 쳐서 점수를 내는 선수가 잘 하는 선수라고 주장한다. 지금 생각하면 그의 견해가 독특한 편은 아닌데 당시 그에 대한 선입견이 있던 시기인지라 그의 견해에 반기를 들고 싶었다.
"네가 말하는 '잘 하는' 선수라는 개념을 일반화할 수 있겠는가? '잘 하는" 선수라면 어떤 투수의 공이라도 잘 쳐내는 선수. 그래서 만화에서나 나오는 10할타자--아 갑자기 구영탄 만화가 보고 싶어진다^^--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지만, 소위 3,4할타자는 되어야 '잘 하는' 선수가 아닌가?"
하고 내 견해를 피력한 적이 있었다.
그 친구의 '잘 하는' 선수와 내가 보는 '잘 하는' 선수가 전혀 다른 관점이란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싸움밖에 되지 않는 문제다.
박주영을 보는 시각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한 경기에 많은 골이 날 수도 있지만 1:0, 2:1, 3:2 등 한 골 차이로 승부를 결정짓는 경기가 많은 게 사실인 축구. 아무리 슈팅력이 뛰어나고 드리블이 현란하고 수비수를 속이는 페인팅능력이 세계적이라고 해도 결국 골을 못 넣으면 다음 경기에 오를 수 없는 토너먼트 시스템의 경기에서는 누가 뭐라고 해도 골결정력을 가진 자가 '잘 하는' 선수임에는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장, 체력, 스피드 등의 다른 면만을 비교해서 '못 하는' 선수가 '우연히' 골을 넣었다고 배 아파하고 비난하는 사람이 아직도 많으니...
자기 의견만 고집하면 상대의 고견은 무시하기 일쑤다. 동년배의 토론장이 아닌 남녀노소를 구분하지 않는 토론장에서 그런 유아틱한 견해차가 너무 자주 벌어지는 것이 인터넷시대의 어두운 면이 아닐까 생각해보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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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벗사랑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17-01-01 17: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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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영의 결승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