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page for 어머니

(2020/11/26)    (2019/12/26)  (2018/11/26)  (2017/11/26)     (2016/11/26)   (2015/11/26)     
(2014/11/26)
    (2013/11/26)     (2012/11/26)     (2011/11/26)      (2010/11/26)     (2009/11/26)    
 (2008/11/26)    (2007/11/26)     (2006/11/26)    (2005/11/26)    (2004/11/26)
   
 (2003/11/26)     (2002/11/26)   (2001/11/26)    (2000/11/26)    (1999/11/26)

 

(2021/11/26)

오늘은 어머니 추도일로 지키는 40번째 날이다. 40년의 세월이 흘렀다. 울산 누나네로 가서 저녁에 추도예배를 드리기로 했다. 프랑스에 있는 동생은 Zoom을 통해 참여할 예정이다.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지나간 세월이 장벽이 되어 가물가물해지는 가운데도 어머니가 업어주시던 날이 많았던 탓에 어머니 등 뒤에서 내가 볼 수 있는 높이보다 더 높은 위치에서 보이던 풍경이 선명하다. 초등학교 4학년에 특수학교로 전학을 갔지만, 영선동 아랫로터리(지금은 영선아래사거리)를 통과하는 학교버스를 타야 했기에 거기까지는 걸어다녀야 했다. (신선동집에서 거기까지는 4개의 정류장이 있어서 지금이라면 시간상 버스를 타는 게 거의 상식적이다) 아침엔 아버지가 함께 걸어가주시지만 하교길에는 어머니가 거기까지 와서 같이 걸어왔다. 비가 오는 경우 우산을 받쳐주시며 걸으셨다. 겨우 보조기를 신고 한발짝 한발짝 걸어야 했던 당시에는 보조기 착용이 빨랐던 다른 친구들에 비해 속도가 반 이상 느렸다. 양쪽 목발을 지렛대삼아  두발짝을 한꺼번에 폴짝하고 디디면 빨리 걸을 수 있는데, 당시 보조기 착용만으로도 힘들었던 나로서는 양 겨드랑이에 목발을 깊이 박고 간신히 걸을 수 있는 정도라서 가파른 오르막길을 걷는 게 쉽지 않았다. 어머니는 한참 같이 걸으시다가 너무 힘들어하는 나를 업어서 십여미터 데려다 주셨다. 그 만큼이라도 큰 힘이 되었다. 내 몸무게가 그리 많이 나가지 않았어도 몸이 연약하신 어머니의 체중을 생각하면 거의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었으니 큰 무리였으리라는 것을 당시에는 생각하지 못한 나이였다. 일찍 철이 들었다고 생각한 나였어도 당장의 신체적 무리보다 어머니가 업어주시는 것을 더 좋아했었던 것이다. 지나고 나니 자책이 드는...

어머니는 거의 매일 학교로 오셔서 수업중에 복도를 걸레질하시기도 했다. 일반학교에서는 교실내외 물걸레질은 학생들의 몫이었다. 그러나 특수학교에서는 아르바이트로 일해주는 고등학생 누나들이 없는 경우 어머니가 해주셔야 했다. 음성적인 학급비를 징수하던 시절 그걸 감당할 수 없던 형편이라 다른 학부모들보다 자주 학교에 와주신 것이다. 지나고 나서 다시 생각해봐도  어머니는 엄청난 희생을 하셨다. 어머니가 장성한 내가 해주는 효도를 받지 못하시고 일찍 세상을 떠나신 것이 안타깝다. 물론 이 땅에서 더 고생하지 않으신 것이 더 감사하기도 하지만...

40년을 기억하는 이 날이 시작되었다. 하늘엔 눈부신 태양이 떠올랐고, 감성적인 음악이 흘러나오는 이 아침, 이 날을 감사히 보내련다.

 

 

(2020/11/26)
새벽에 눈을 떴다. 거래처로 바로 방문해야 하는 날이라 서둘러야 할 시간이어서다. 오늘은 39년전 돌아가신 어머니 추도일이다. 원래 계획은 거래처를 방문하고 울산으로 가서 누나네 가족과 예배를 드리고 돌아오려고 했었는데, 평일인데다 바쁜 형편들이라 지난 주일에 누나네가 집으로 와서 예배를 드렸었다. 그리고, 정말 오랜만에 장문의 일기를 다이어리에 남겼다. 아래는 그 원문이다.

2020.11.22. 어머니추도예배를 드리며

예배후 귀가해 교회일처리하는 중에 울산에서 누나네가 집으로 왔다. 어머니추도일은 목요일인데, 평일에 모이기 어려운 여건이라 오늘 당겨 예배를 드리기로 한 것이다. 며철전 나는 거래처 방문후 울산으로 가서 예배드리고 올 게획이었는데 누나가 그런 제안을 해서 좀 뜨악했었다. 나도 힘든 날이긴 해도 추모예배를 당일날 못하겠다는 누나의 사정을 이해하면서도 조금은 상한 마음이었다. 11월 한달은 매일 잠언 한 장씩을 말씀을 나누고 있다.

어제 읽은 말씀 중 나눈 한 구절은 잠언 21장 3절이다.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것은 제사 드리는 것보다 여호와께서 기쁘게 여기시느니라

지난 화요일에는 잠언 17장이었다.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 (9절)

조카들이 매년 이 찬송만 부르냐고 지적한 301장 "지금까지 지내온 것" 찬양하고 이 두 구절을 읽고 내가 이번 추도예배를 일찍 당겨 드리며 든 생각을 나눴다. 내가 예배를 그날 드려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정작 하나님이 중요하게 여기는 우리의 행위를 반성했다. 어제 아침에 십수년전 개인정보 보호탓에 웹에서 내린 누나&매형을 위한 페이지 출력해 놓은 걸 누나에게 줬더니 다 반가워한다. 개역개정 주기도문을 함께 읽으며 예배는 15분여만에 마쳤다. 그리고 배달되어온 피자와 스파게티를 먹으며 저녁시간을 보냈다. 나흘 전에 드린 예배지만 참 기쁜 시간이었다. 추도예배의 주인은 39년전에 돌아가신 어머니를 기억하면서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예배라는 걸 새삼 확인한다.

 

(2019/11/26)

오늘은 어머니의 38주기 추도일이다. 홈페이지 개설이후 꼬박 21번째 어머니를 추모하는 글을 올리고 있는 셈이다. 몇주전에 교회역사위원회 활동의 일환으로 교회어르신들에게 교회와 교인이 나온 사진을 달라고 요청했고 바로 휴대폰으로 촬영해 돌려드렸는데, 거기서 우리 집 앨범에는 없었던 어머니의 얼굴 몇 컷이 비쳤다. 사진을 가져다주신 어르신들이 어머니를 기억하시고 보여주시기도 했다.
엄마 뱃속에서부터 교회를 다닌 나는 그야말로 "모태신앙인"이고 65년 교회역사 속에서 처음으로 모태신앙인으로 장로가 된 기록을 가능케 하신 어머니의 자랑스런 아들이다.
어머니가 찍힌 사진 속의 얼굴들 중 기억나는 분들도 있다. 여전히 살아계시고 교회에서 뵙는 얼굴도 있지만, 이미 고인이 되신 분들이 대다수다.
새로 발견한 사진 몇 장을 공유하는 방법을 생각하다가 무비메이커를 이용해보기로 했다. 작업은 역시 시간이 꽤 걸린다. 1시간이면 충분할 줄 알았는데, 자막을 넣고 음악을 배치하고 편집하려니 어느새 두시간, 세시간이 훌쩍 넘어간다.

3분11초짜리 슬라이드쇼에 저수준 자막과 음악을 첨가한 이 동영상으로 오늘의 기록은 대신하련다. 저녁에 울산에서 누나네와 예배드리고 식사할 예정이다.

동영상바로보기

 

(2018/11/26)

새벽에 눈이 떠졌다. 페이스북 과거의 오늘에는 지난 수년간 어머니추도일의 기록이 남아 있어 모처럼 읽어보았다. 어느새 37주기를 맞이한 오늘.
3년전부터 교회제자들에게 새벽마다 보내고 있는 오늘 읽은 성경한구절은 공교롭게도 작년과 동일한 로마서다.

내가 붙인 제목은 "사랑의 빚 외에는"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Let no debt remain outstanding, except the continuing debt to love one another, for he who loves his fellowman has fulfilled the law. (로마서 13장  8절)

이틀전 신선동집을 정리하며 가지고 온 박스에서 어머니의 이름이 적힌 문서를 발견했다.
조정희
1978년 10월 어머니는 전화국에 집전화를 청약하셨고 그 청약서류가 우편으로 보내진 것이다. 실제로 전화개설은 1980년 9월 1일로 기억한다. 왜냐하면, 그날 전두환이 북한식 어용 선거인단인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11대 대통령에 당선되어 취임하던 날이어서다. 채널이라야 지상파 방송 3개 KBS, MBC,TBC(그해 11월 KBS에 강제통폐합되어 KBS2TV가 탄생했었다) 뿐이었기에  그 시절 모든 매체는 취임 실황을 중계하고 있었고, 우리 집에는 하얀 백색전화기가 놓여졌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이름이 공적으로 쓰인 곳은 교회 외엔 기억이 없었고 어머니가 바느질 품삯으로 모으셔서 이사를 했던 신선동 집의 매매계약서에도 당연히 아버지의 이름만이 남아 있었기에 어머니의 이름이 공적으로 쓰인 기록을 처음 발견한 것이다.
함께 발견한 누런 봉투에 담긴 것은 어머니의 사망진단서와 사망신고서
진단서에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직접 사인(死因)이 기록되어 있었다.

직접사인 간성혼수
중간선행사인 식도정맥류출혈
선행사인 간경화

아버지는 그 기록을 보관하고 계셨던 것이다. (내가 기록에 집착하는 이유를 이를 통해 간접확인한다. )
이제 내겐 작년에 돌아가신 이모님,  12년전 돌아가신 아버지, 그리고 있는지도 몰랐던 어머니의 사망신고서가 있다.

추도일이어야 37년전에 돌아가신 어머니를 기억한다는 서글픈 세월의 추억.
그래도 이 땅에 남아 멋지게 살아가는 나와 가족들이 되기를 다짐해보는 날이어 감사하단 고백을 남기련다.

(2017/11/26)

1시간 남은 26일에 어머니 추도일 기록을 남긴다.
주일이라 무지 바빴다. 교회 회계연도 마지막 주일이라 예결산자료 정리도 해야 하고, 회의도 해야 하고, 그래서 저녁에 누나네 가족이 아파트로 와서 함께 예배를 드리기로 했다.

누나는 회를 사 오고, 난 우리 동네 명물 김가네 만두를 사 왔다.

이모님이 돌아가시고, 처음 맞이하는 추도예배. 작년엔 토요일이라 누나네가 함께 와서 예배를 드렸던 기록이 요 밑에 있다.

학업차 서울에 있는 지현이와 프랑스에 있는 동생 외에 다 참석했다. 나현이도, 서현이도.
찬송가 301장을 함께 부르고, 말씀은 로마서 1장 1-7절을 조카 서현이가 읽었다.
99년 기록을 한 모든 추도예배날의 풍경이 기록되어 있는데, 오늘은 내가 성경 66권중 가장 좋아하는 말씀 로마서를 우리 조카들도 의미를 느끼고 읽게 하고픈 생각이 강했다.
로마서를 통해 신앙을 회복한 많은 선배들이 있다. 그리고 나 역시 그랬다. 그 경험을 조카들이 하게 하고 싶었다.

예배후 회와 만두를 푸짐하게 먹었다. 오랜만에 먹는 아나고 회도 맛있었고, 내가 사 온 만두에 대한 반응도 좋았고. 그리고 누나의 손이 필요해 기다렸던 일, 다용도실에 가득찬 플라스틱 재활용품을 드디어 처리했다. 확 비워진 그 공간을 치워준 것만으로도 행복한데, 오늘은 무척 피곤한 날인데도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나는 보지 않는 주말 연속극 '황금빛 내인생'을 보고 가야겠다며 벽에 기댄 4명의 누나네 가족이 TV를 향해 있는 장면을 찍었다. 뭔가에 열중한 저 일념^^

동생과 페이스톡으로도 인사를 나누고..

올해 추도일은 이렇게 지나갔다. 감사함과 함께.

 

 

 

(2016/11/26)

벌써 1년이 지났다. 어느새 35주기가 되었다. 오늘은 토요일이라 울산 누나네가 와서 함께 예배를 드리기로 했다.  이모님이 연로하셔서 음식 준비하지 않도록 백화점에서 간단히 먹을 음식을 장만했다.
오랜만에 여럿이서 예배를 드리니 그 짧은 시간에도 감사할 뿐이다. 찬송가 301장을 부르고 말씀을 같이 읽고 내가 기도한 후 주기도문으로 마치는 짧은 추도예배. 오늘 나눈 말씀은 어제 심야기도회에서 들은 에스겔 36장 36, 37절이다.

    너희 사방에 남은 이방 사람이 나 여호와가 무너진 곳을 건축하며 황폐한 자리에 심은 줄을 알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으니 이루리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내가 그들의 수효를 떼 같이 많아지게 하되

이스라엘이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간 후 폐허가 된 고향을 다시 회복시키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을 선지자를 통해 전하는 하나님은 그 약속을 이루겠다고 하시면서도 그걸 이스라엘 족속이 구하여야 한다고 언급한다. 내가 구하지 않아도 필요한 것을 주시는 주님이시지만 우리가 구해야 한다는 것은 쓸 데 없는 짓이라고 여길 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성경에는 그렇게 언급한다.

우리 가족을 이끄신 하나님께 감사를 표현하는 이 시간. 이 말씀을 우리 가족이 기억하자고 했다.
뒤늦게 실험으로 피곤에 지친 조카 나현이도 참석해서 함께 식사를 했다. 이모님도 모처럼 잘 드시는 모습에 기뻤다. 가족이란 그런 것이다. 매일 함께 식사를 나누진 못해도 이렇게 때마다 만나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 특히 기독교인으로서  추도일을 이렇게 나누는 전통을 가진 우리 가족의 모습은 자랑스럽다.

 

 

(2015/11/26)

오늘은 어머니추도일이다. 매년 하듯이 이모님과 추도예배를 드리는데, 오늘은 아침 먹기 전에 일찍 드려야 했다.
오늘 중국 출장 일정이 잡혀 곧 공항으로 가야해서다.
매년 일 때문에 가긴 하지만, 이렇게 추운 날씨에 간 적은 없는데, 웨이하이 날씨를 검색하니 영하에 눈소식도 있다.
공항에서 공장까지 이동하는데 어려움이 없어야 하는데...
새벽에 깨어 오늘 무슨 말씀을 나눌까 생각하며 로마서를 읽었다.
한달여전부터 고3 우리반 학생에게 내가 읽은 성경 중 한 구절을 카톡으로 보내고 있는데, 그렇게 선택한 말씀을 오늘 예배 말씀으로 정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로마서 8장 28절이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And we know that in all things God works for the good of those who love him, who have been called according to his purpose.

이 말씀을 좋아하는 이들이 많다. 어떤 상황이든 하나님은 그 사랑하는 자를 위해 좋은 것을 이루시는 분이시다.
얼마나 큰 위로의 말씀인가.

나의 벗들에게도 이 말씀이 오늘 하루 큰 위로와 묵상의 기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2014/11/26)

요셉의 형제들이 그들의 아버지가 죽었음을 보고 말하되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아니할까 하고
요셉에게 말을 전하여 이르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나니 당신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인 우리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하매 요셉이 그들이 그에게 하는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
그의 형들이 또 친히 와서 요셉의 앞에 엎드려 이르되 우리는 당신의 종들이니이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창세기 50장 15~21절)

오늘은 어머니 추도일.
저녁에 이모님과 둘이서 예배를 드렸다.
어느새 또 1년이 된 것이다.
오늘 아침 청매의 성경본문이 창세기 50장 마지막 페이지였다. 요셉을 생각하면 요셉이 이 마지막 장면에서 그를 두려워하는 형제들을 향해 그가 겪은 인생의 질고가 다 하나님이 선을 이루시는 역사라고 평가한 고백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많은 크리스챤들이 이 부분에서 위로를 받고 그로 인해 자기 아들의 이름을 요셉으로 삼는 이도 많았다. 구약의 인물 중 가장 존경받는 인물임에 틀림없는 요셉.
가족을 생각하는 추도예배 본문으로는 뜬금없을 지 모르지만 난 이 말씀 속 요셉의 고백이 우리들의 고백이었음을 나누고 싶었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거나 배신하는 일 없었지만,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이기적인 생활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요셉의 이와같은 고백이 우리들의 목표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아직 우리의 생이 언제 마칠지 모르지만 남은 인생 속에서 요셉과 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은 바람직한 목표가 아니겠는가.
내년 이 맘때 다시 추도예배를 드리며 오늘 나눈 요셉의 고백을 되뇌일 수 있는 우리가족이 되기를 진정 소망한다.
그것이 어머니가 우리에게 남기신 유언이 아니겠는가.

 

 

 

(2013/11/26)
오늘은 11월 26일.
일찍 귀가하니 이모님이 몇가지 반찬을 만들고 계신다. 올해로 85세인 이모님이 어머니의 32주기 추도일을 맞아 저녁상을 준비하시는 것이다.
바빴던 하루라 좀 일찍 와서 예배를 준비하려고 했는데 이모님은 더 빨리 준비하셨다.
어떤 말씀을 나누며 추도예배를 드릴까 생각하다가 떠오른 말씀이 야고보서 2장 14절~25절이다.
돋보기를 끼신 채 더듬더듬 읽으시는 이모님과 보조를 맞추며 함께 성경을 읽었다.
왜 이 성경 본문을 선택했는지 이모님께 말씀드리고 나서 기도를 했다.
올해는 이모님과 둘만이 드리는 예배인데도 왜 기도하는 가운데 눈물이 나는지...
가족 한명 한명의 이름을 부르며 하는 기도라서 그랬는지...
32년이나 흐른 시간.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점점 가물해지는데
오늘따라 어머니 대신 32년간 나를 돌보고 계신 이모님을 보는 내 맘이 짠하다.
며칠 전 서울에 올라가 있는 동안 혼자 감기를 심하게 앓으셨는데 미처 살피지 못한 걸 알고서 얼마나 미안했던지....
오늘도 약한 몸을 이끄신 채 반찬을 준비하시는 이모님은 우리 남매들에겐 어머니와 매한가지다.
매일 새벽에 깨어 한 시간 가량 기도하시는 이모님.
이모님이 계셔서 우리 교회를 든든히 세우고 계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이 불러 가실 때까지 지금 이대로처럼 기도하고 거동하시길 소망한다.
하늘 나라 어머니도 기뻐하시지 않을까.

오늘 읽은 성경 본문이다. 여러분도 묵상해보기를...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 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대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이 행함과 함게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2012/11/26) 31주기 어머니추도일

오늘은 어머니추도일이다. 31년이 지났지만 잊혀지지 않는 날이다. 오늘이 월요일인지라 어제 저녁 울산에서 매형과 누나 그리고 막내조카 서현이가 함께 참석해서 예배를 드리고 저녁을 먹었다. 늘 내가 예배준비를 하기 때문에 함께 나눌 성경말씀을 찾았는데 어제는 마땅한 성경구절이 생각이 안 났다. 가끔씩 내 홈페이지를 검색하는 이들의 검색어에 추도식 성경구절이 있을 정도지만 요즘 내가 성경말씀을 가까이 하지 못한 탓이 아닌가 싶었다. 그러다가 문득 히브리서11장이 찾았다. 이곳은 '믿음'장으로 유명한 곳인데 40절이나 되는 긴 장이라서 함께 읽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함께 윤독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로 시작한 히브리서 11장은 성경 속 믿음의 조상들이 어떤 믿음을 보였는지 증거하는 말씀이다. 어머니로 시작한 우리 가정의 '믿음'이 대를 이어가는 모습을 어머니가 흐뭇하게 여길 것이다. 그리고 이 예배를 통해 우리 가정은 우리가 믿음에 있는가를 다시 확인하며 우리를 돌아보게 된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뵌 적이 없는 매형은 내가 노트북을 켜 띄워둔 화면에서 흑백사진을 보셨다. 조카는 어머니와 함께 찍힌 누나에게 관심을 가진다. 이게 소소한 행복이지 않겠나.

 

 

 

(2011/11/26) 30주기 어머니추도일
만사가 오케이일 때 더 조심해야 하고 남들이 다 칭찬할 때 더 겸손해야 하며 아프지 않을 때 더 건강에 주의해야 하며
되는 일이 하나도 없을 때 오히려 감사해야 하며 시도한 일이 실패했을 때 성공에 대한 기대를 가져야 한다.
현재 상황과 늘 반대의 마음을 가지며 누림의 기쁨을 조금 더 미룰 때 어쩜 짧게 느끼고 끝내 사라져 버리는 행복함을 더 맛볼 수 있지 않을까.


오늘은 어머니 돌아가신지 30년이 되는 날.
토요일인지라 울산 누나네도 참석하기로 했다. 서울에서 공부하는 나현이는 빠졌지만 3학년 막내 서현이도, 두 번재 수능을 마친 지현이도 참석하여 예배를 드리고 함께 저녁을 먹었다. 함께 찬양하고 말씀을 나누고 내가 기도하는 순서로 진행되는 짧은 예배시간이지만 참 의미로운 시간이다. 역시 예배는 함께 모여 드리는 것이 원칙이어야 한다. 비록 매년 이렇게 모일 수 있는 여건은 아니지만..
어머니가 뿌린 복음의 씨앗이 장성한 나무가 되어 열매를 맺는 과정을 돌아본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되셨으며 또 지금도 언제나 지켜주신다는 믿음. 그것이 우리 가족에게 전달되는 오늘의 메시지였다.
아침에 나눌 말씀을 떠올렸다. 시편을 뒤젹였다. 그리고 121편을 찾았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도 아니하시리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개역개정 시편 121편)



 

(2010/11/26)
29번째 맞는 어머니추도일.
저녁을 먹고 예배를 드렸다.
오늘 말씀은 사무실에서 결정했다. 외울만큼 많이 읽었던 야고보서 1장이다.
정말로 20여년전엔 이 말씀을 통째로 암송했었다. 가르치던 학생들이 성경을 읽도록 하기 위해 교사인 나는  통째로 외워 오겠다고 약속했던 말씀이다.
야고보서는 크리스챤들에게 '행동, 실천'의 성경이다. 이 말씀을 읽으면서 머리로만, 가슴으로만의 신앙인이 아닌 행동하는 신앙인의 자세를 반성하게 된다.
그래서 이모님과 동생이 함께 드린 추도예배 시간에 함께 읽을 본문으로 정했다.
기억도 가물해진 어머니 돌아가시던 날. 당시 집은 허물고 새로 지은 방에서 예배를 드린다.
역시 이 날 예배에서 찬양하고 말씀을 나누고 기도하면서 드는 것은 감사제목들이다.
짧은 예배시간이지만 우리 가족의 미래를 위해 기도하고 현실에 감사할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하다.
한번도 읽어보지 않은 본문이라면 잠깐만이라도 읽어주면 좋겠다.
마우스로 긁어서 올리지 않고 직접 타이핑하는 저의 수고를 기리는 마음에서라도^^

 1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 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
 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3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6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7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8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9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10 부한 형제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찌니 이는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11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우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
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13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
16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17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18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19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하라
20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
21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 버리고 능히 너희 영혼을 구원할 바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
22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23 누구든지 도를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으니
24 제 자신을 보고 나서 그 모양이 어떠한 것을 곧 잊어버리거니와
25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 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 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26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27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타이핑하는 데 십분이나 걸리네요. 헉헉^^

 

 

 

 

 

(2009/11/26)
이 홈페이지에서 계속 되는 것 한 가지는 11월 26일이다. 어머니는 1981년 11월 26일에 돌아가셨다. 28년이나 지난 세월...이제 까마득한 옛 일인데도 돌아가시던 날의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다. 한국전쟁을 겪은 세대들이 전쟁의 고통을 수십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닐까?
아래 사진도 어머니 돌아가시기 전 1년전에 찍힌 사진이다. 몇 년동안 병치레를 하신 탓에 살도 많이 빠지셨었다. 기억하기로 저 나약한 모습에도 늘 성실하셨던 어머니시다. 아버지가 가져오시는 월급으로는 부족해서 몇 푼 안 되는 생활비에 보태려고 재봉틀을 돌리시기도 하셨다. 수도가 집집마다 없던 시절 공동 수도에서 물을 길어오시기도 하셨다. 이제 그런 고생스러운 일들이 추억 속의 소재로밖에는 찾아보기 힘든 좋은 세상에 살면서 감사하지 않는다면 인간이라 할 수 없겠다.
어머니 같은 여자를 만나보지 못했다. 어머니처럼 헌신적이셨던 여자는 이 세상에 없는 것일까? 나이 차 많은 아버지에 대해 막대하시던 적이 내 기억엔 한번도 없다. 그래서 속으로 앓으신 적이 많다. 술 취해 들어오신 아버지의 잔소리를 피해 나를 업고 집밖에서 계시던 기억이 난다. 종교적인 이유에서 술을 안 먹기도 하지만 어린 시절 술 마시면 늘 하시던 잔소리 때문에 술 먹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것도 한 몫한 것 같다.
전형적인 우리 나라 어머니상을 보이셨던 어머니. 그런 어머니 같은 여자를 만나고 싶다. 이기심이 없을 수는 없어도 적어도 10%만 표현할 줄 아는 그런 여자가 그립다.


 

 

 

 

(2008/11/26)
1981년 이후 27번째 추도예배가 있던 날. 8년만에 동생이 함께 예배드렸다. 작년엔 누나네 가족들이 참여했지만 주중이라 이모님과 단 둘이서 드릴 수밖에 없었을텐데 감회가 새롭다.
저녁을 먹기 전에 예배를 드렸다. 늘 그랬듯이 460장 찬송을 부르고 성경 한 구절을 읽었는데 올해는 셋이서 함께 봉독을 했다. 동생과 나는 가로로 인쇄된 성경을 읽고 이모님은 세로로 된 것을 읽는다. 아무래도 같은 속도로 읽으려면 젊은 우리가 보조를 맞춰드려야 한다. 어떤 말씀을 읽을까 고민하다 선택한 말씀은 내가 좋아하는 요한일서 4장 7절부터 21절까지다. "사랑"이란 말이 가장 많이 들어있는 성경 본문이다. 그런데 이 성경 구절을 평소 속도보다 천천히 읽게되니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긴다. 27년째 예배를 드리며 늘 울음바다가 되었었지만 올해는 그러지 않을 것 같았다. 이제 1년 중의 한 날로 각인될 만큼 세월이 흘렀단 생각이 들었던 탓이다. 그런데 왜 내 맘을 찌르는지...성경을 다 읽기도 전에 목이 메어 큰 숨을 들여 마시고 읽기를 이어가야 했다.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눈물로 기도를 마치고 맛있게 저녁을 먹었다. 이 음식을 준비하신 이모님께도 감사하고 내가 이렇게 건재함도 감사하고 우리 가족 모두 평안하고 건강하게 지켜주심도 감사하고...단지 어머니를 기억하는 날로 이 추도일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이 땅에 살아서 먼저 가신 어머니가 기대하는 수준의 삶을 살아가자고 다짐하며 오늘을 추스리는 의미가 더 큰 날이다. 아래 퍼온 성경을 그냥 눈으로 읽지 마시고 한번 정독해서 읽어보세요. 믿음이 있는 자든 없는 자든 상관하지 말고 이 순간 한번 읽어봐보세요. 당신에게도 그의 사랑이 전해질 겁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것이니
사랑
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
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
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사랑
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거하노니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저 안에 거하시고 저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룬 것은 우리로 심판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의 어떠하심과 같이 우리도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 하는 자니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찌니라

 

(2007/11/26)
26년전..이란 강풀의 만화가 있었다.
작년 5월경 광주사태를 모티브로 한 가상극이었지만 워낙 많은 관계자들이 있어서
이슈가 된 적이 있다. (아마 이것도 다른 강풀의 작품들처럼 영화화 혹은 드라마화할 것으로 기대된다.)
어제는 주일이었고 울산에서 누나 가족이 다 참석했다.
아버지 첫 추도예배일도 그렇게 지냈듯이 어제도 오늘 어머니의 26주기를 맞으며 예배를 드렸다.
연수 다녀오느라 몸이 많이 지쳐 있는 상태인데도 교회예배와 순서를 모두 마치고 집에 와서
함께 예배를 드렸다.
늘 부르는 460장 '지금까지 지내온 것...'을 부르고 지현이와 나현이가 고린도전서 13장을 교독하고
내가 잠깐 말씀을 나누고 이모님이 기도하시는 것으로 진행된 예배다.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어 가족들과 함께 예배를 빠뜨리게 된 날 외에 아마 다른 명절엔 이모님이 기도하셨지만
어머니 추도예배때는 거의 내가 기도를 했었던 것 같은데 막내 서현이가 '누가 기도해?'하고 묻는 바람에
이모님께 바턴을 넘겼다. 이모님은 역시 친동생에 대한 생각이 남다름을 느낄 수 있다.
강한 이모님이신데도 어머니를 입에 담는 순간에는 그 예전의 기억들이 떠오르지 않으셨을까?
내가 기도를 하지 않아서 올해는 눈물을 보이지 않을 것 같았는데
또 눈시울을 닦는다.
지난 봄에도 서현이가 '왜 울어?'하며 묻더니 어제도 그런다.
'기도할 때 왜 울었어?'
우린--서현이를 제외한 모두-- 지난 봄과 마찬가지로 빙그레 웃음을 짓는다.
나도 말씀을 나누며 다시 언급했다.
지현이, 나현이, 서현이는 보지도 못했던 26년전의 나의 어머니신지라
너희들에게는 정말 와닿지 않는 분에 대한 추도예배란 것을 잘 안다고.
그래서 영원히 가까이서 접하던 할아버지--나의 아버지--처럼은 느끼지 못하고,
엄마랑 삼촌이랑 이모가 함께 느끼는 그 분에 대한 마음을 그대로 가질 수는 없더라도
우리들이 소중히 생각하는 분임을 기억하라고.
얼마전에 누군가에게 나누었던 말씀을 전했다.
"사랑은 오래참고...."
왜 바울 사도는 다른 어떤 정의에 앞서 '사랑은 오래참고'로 시작했을까 하는 질문을 함께 나누는 시간이었다.
사랑은 다른 그 어떤 것을 잘 한다고 하더라도 참지 못하는 그 단순함에서 진도를 못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고.
어머니의 사랑을 다시 떠 올려 보는 귀한 날이다.


(2006/11/26)
이 페이지를 만든지 어느새 7년이 되었다. 매년 이 날을 기억하여 글을 썼다.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는 이 기록을 읽을 때면, 타임머신을 타고 간 느낌이 들곤 한다. 올해는 지난 6년과는 다른 날로 기억된다. 병중에 계시던 아버지께서도 하늘나라로 떠나셨기 때문이다. 나의 소중한 사람이 먼저 세상을 떠나시고 25년, 그리고 다시 소중한 아버지를 보내고 남아 있는 나...
아무 것도 하실 수 없으셨어도 살아계셔서 병원에서 만날 수 있고, 또 아무 것도 해드릴 수는 없어도 눈을 마주할 수 있고,  또 비록 대화를 나누지 못해도 공감하고 기도해줄 수 있었던 시절이 그립다. (오늘따라 평소에 안 가던 그 병원길들을 다니게 되어서 더 그렇네)
이제 나를 지켜보는 눈이 더 늘었는데...오늘 나를 돌아보니 작년보다 만족스럽지 못하고 또 주위 사람들에게 유익한 존재로서보다는 질책하는 선배, 선생님, 상사로 자리 잡고 있는 걸 느낀다.
말로 상처주지 않았어도 무언 그 자체가 상처가 되기도 하고, 상대에게 필요한 충고라 할지라도 너무 써서 달게 느껴지지 않았을테고.....
조금만 참아주었으면 하던 일들을 참아주지 않아서 실망케 하거나, 내가 세운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어 버린 행위들이 왜이리 많았는지.....
아래 쓴 글에서도 실망시켜드리지 않겠다고 다짐했건만...

어머니...
아버지...
천국에서 만날 때 부끄럽지 않은 존재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남은 인생길 늘 주목하소서.

하나님!
이제 잘 살게 하소서.
무엇을 하든 더 책임감 있게...
세상의 기준으로 행복한 사람이 되기보다는 당신의 기준에 부함한 사람으로 살게 하소서.
제게 주신 사람들의 얼굴을 외면하지 않게 하소서.
저와 이어진 사람들을 기억하게 하소서.
.................
..........
.....


 

 

 

(2005/11/26)
초등학교 때--당시는 초등학교^^--대구로 경연대회를 하러 갔다. 아마 기억하기로 난 시조나 붓글씨 종목으로 간 것 같은데 대회장에는 노래경연장도 있었다. 누가 불렀는지는 기억할 수 없지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들어보는 아름다운 음악에 매료되었던 기억이 있다. 가요도 아니고 동요도 아닌 영어로 부른 "Mother of Mine"이었다. 제목을 몰라서 이 곡을 찾지 못했었는데, 한참 후에나 그렇게 유명한 곡인 것을 알았다.
인터넷에서 가사를 찾았다. 아마 이 곡과 함께 들려줄 수 있는 저작권프리곡이라면 그렇게 하겠는데..이젠 개인 홈페이지에서 그럴 수는 없기에 아쉽지만 가사로 만족해야겠다.

그 대회에는 당연히 어머니도 따라가셨을 것이다. 어머니가 계셨기에 아마 한참 투정도 부렸을 테고.....초등학교 시절 하교길에 영선동 아랫로타리까지 학교버스가 데려다준다. 거기서 신선동 우리집까지는 한참동안 가파른 길을 올라야 했다. 가방을 드신 채 나를 따라 오시거나 힘들 때 밀어주시거나 또 일정 구간은 업어주시며 걷게 하셨던 어머니가 떠오른다. 사람들의 눈을 의식할 수밖에 없었던 어린 시절. 이제 장성해서 보니 그런 아들을 곁에서 함께 보시며, 때론 업으시며 같이 하셨던 어머니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별 볼일 없는 아들을 위해서 희생을 감수하셨던 어머니를 생각하니...이 글을 쓰면서 Mother of Mine 을 듣고 있다. 아마 그래서 더 감정적으로 빠지는 것 같다....눈물이 흐른다...
사랑합니다. 어머니.
천국에서 뵐 때까지 어머니 실망시켜드리지 않겠습니다.

Mother of mine!
You gave to me all of
my life to do as I please.
I owe everything I have to you.
나의 어머니!
어머닌 내가 좋을 대로 하도록
나의 모든 삶을 허락해 주었어요.
내가 가진 모든 것은 어머니 덕분이에요.

Mother, sweet mother of mine!
mother of mine! When I was young
You showed me the right
way things should be done.
Without your love,
where would I be?
어머니, 사랑스런 나의 어머니!
나의 어머니, 내가 어렸을 때
어머닌 가야할 오른 길을
내게 보여주었어요.
어머니 사랑이 없었더라면
난 어떻게 되었을까?

Mother, sweet mother of mine.
Mother, you gave me happiness
much more than words can say.
어머니, 나의 사랑스런 어머니
어머닌 말할 수 없는 많은 행복을
내게 주었어요.

I pray the Lord
that He may bless you
every night and every day.
난 매일매일
어머니에게 축복이 있기를
하나님께 기도를 드려요.

Mother of mine!
Now I am grown.
And I can walk straight
all on my own.
I"d like to give you
what you gave to me.
나의 어머니
이제 난 어른이 되어
나 혼자서도
똑바로 걸을 수 있게 되었어요.
이제 어머니가 제게 준 것을
돌려드리고 싶어요.

Mother, sweet mother of mine.
Mother, you gave me happiness
much more than words can say.
어머니, 나의 사랑스런 어머니
어머닌 말할 수 없는 많은 행복을
내게 주었어요.

I pray the Lord
that He may bless you
every night and every day.
난 매일매일
어머니에게 축복이 있기를
하나님께 기도를 드려요.

Mother of mine!
Now I am grown.
And I can walk straight
all on my own.
I'd like to give you
what you gave to me.
나의 어머니
이제 난 어른이 되어
나 혼자서도
똑바로 걸을 수 있게 되었어요.
이제 어머니가 제게 준 것을
돌려드리고 싶어요.

Mother, sweet mother of mine.
Mother, sweet mother of mine
어머니, 사랑스런 나의 어머니
어머니, 사랑스런 나의 어머니

 

 

(2004/11/26)
오늘(11/26)은 어머니추도일.
벌써 6년째 이 날을 기억하며 글을 쓰고 있다.
오늘은 무척 바람이 세다.
날씨도 꽤 추워진다는 예보가 오랜만에 맞았나 보다.
1년전의 글을 읽어보았다.
1년전의 내 모습을 그려본다.
중3때 헤어진 어머니의 얼굴이 지난 23년간 늘 내 가슴에
간직되어 있었다고 말한다면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방송용멘트일 뿐이다.
내가 어머니를 기억하는 이유는
현재의 나를 다시 생각키 위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래서 요즘 내 신상의 변화를 추구하려는 나를 보면서
가장 좋은 상담자가 되어 주셨을 어머니를 그리는 것은 당연지사가 아닐까.

올해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교회에서 봉사하셨던 회계집사 일을 자청해서 하고 있다.
그리고 다음 주면 교회 1년 살림의 결산작업을 해야 한다.
23년만에 어머니가 하셨던 일을
아들이 이어 한다.....

어머니.
오늘 뉴스를 보니 비영어권 세계에서 가장 호감을 가진 영어 단어는 mother라고 한다.
인종, 남녀, 노소, 국적을 불문하고 가장 기억하고 싶은 단어가 아닐까.
어머니.
어제 배달된 한겨레신문 광고섹션에서 Bravo your life! 를 선전하는 삼성생명 광고문구가 한겨레광고대상을 먹었다는 기사를 읽었다.
광고인들도 소비자가 가장 감동할 단어가 어머니 인 것을 이미 알고 있다.
어머니.
설사 세상 사람들이 어머니를 욕하는 일이 있더라도 그 자식에게는 세상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존귀한 이름이다.
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께 감사를 드린다.

어머니를 기억하시는 오늘 하루 되세요.



 




(2003/11/26)
자정이 넘은 시간이다.
영화 보고 늦게 들어와 컴 앞에 앉아 영화평 쓰고 업로드하고 나니 어느새 날짜가 바뀌었다.
11월 26일. 어머니추도일이다.
아래 1년전에 쓴 글을 보니 지나간 1년이 어떠했는지 다시금 떠오른다.
다시 해보라고 하면 천만금을 준다고 해도 못할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힘들었다.
작년보다 더 악화된 아버지의 병세.
아버지가 살아 생전 병중의 어머니를 곁에서 간호하시며 지켜보셨던 병원생활보다 더 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나.
그러나 지금은 사람들이 생각할 만큼 힘들지 않다.
여전히 벗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난 자유로와요 평안을 느껴요 라고 섣부른 간증을 하기는 싫지만 정말로 지금은 평화로운 게 사실이다....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가물해질만큼 시간이 흘러간다. 매년 기억을 더듬으려고 노력하지만 어머니랑 함께 살았던 시간보다 더 긴 시간을 보낸 터라 그 일들이 사진 인화하듯이 뚜렷하게 나오지 않는다.

어머니는 딱 한번 나를 때리셨다. 내 다리 낫게 하시려고 할 수 있는 민간요법은 다해보시고 늘 애지중지 키우셨었는데 딱 한번 빗자루로 엄청 때리셨다. 초등학교 1,2학년때로 기억한다. (이사가기전 집에서의 일인 것은 확실하니까)
어머니의 무서운 매질을 피해 방구석으로 도망가며 용서를 구하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할 만큼 특별한 일이었으니까 말이다. 어머니가 매질한 이유는 내가 주일학교 예배중 기도하는 시간에 옆자리의 친구랑 눈뜨고 얘기를 했었던 까닭이다. 바라실 것은 하나님뿐이었던 어머니가 거룩한 예배시간에 딴짓하는 내 모습을 누군가에서 전해듣고 얼마나 화가 나셨는지는 당시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항상 무서운 분이었지만 어머니는 그렇지 않았고 늘 내 편이었는데 그렇게 심하게 맞을 줄은 몰랐었다. (그러나 매의 효과는 확실했다^^ 다시는 주일학교예배시간에 딴청 부린 적이 없는 FM으로 컸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솔직히는 요즘 교회에서 정말 버릇없이 자라는 애들 보면 우리 어머니처럼 단 둘이 있는 방에서 정말 모질게 버릇을 고쳐놓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끔한다. 비록 내가 심리학을 공부하고 상담학을 연구한 바 소위 사랑의 매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에 동의하긴 하지만 말이다.)

어머니가 그토록 소중히 섬기셨던 하나님을 난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도 한참 후에야 만났다.(이 만남은 환상속의 미팅이 아니다. 크리스찬은 인격적인 존재로서의 하나님을 만난 후에야 진정으로 신자가 된다. 그것은 세례를 받는 형식적인 요건과는 관계없다.)

비록 여전히 절망의 구렁텅이와 세상의 손길에 빠지고 흔들리곤 하는 불완전한 존재이지만 어머니에게서 받은 귀한 신앙의 전통은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선물이다. TV시청시간이 저녁6시였던 시절 추운 겨울방학 아랫목에 엉덩이를 서로 밀어넣고 이불 속에서 추위와 싸우면서 불렀던 어머니의 찬송소리와 성경읽는 모습은 바로 나의 삶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는 자연스러운 교육이었으니 말이다.

지금의 내가 크리스찬이 아니었다면
지금처럼 살지 않았을 것이다.
어쩜 지금의 나보다는 편하게 살았을지 모르겠다.
병든 아버지는 어디 멀리 버려버리고 내 내키는 대로 욕구충족하면서 사람에게 상처주는 것들은 생각조차 하지 않고 맘대로 맘대로 살았을 테니까 말이다.

그러나 나의 하나님은 내가 그렇게 살기를 원치 않으신다.
나로 인해 어떤 영향을 다른 사람들이 받을 지 모르나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고 독특하다.
내가 당장 내일 숨을 거둔다해도 후회가 없을 수 있는 것은 그런 믿음 때문이다.

한 평생 나를 위해 희생하시고 먼저 가신 어머니의 아들은 또 그렇게 살아간다.
비록 아직은 또 다른 나처럼 살아갈 아들이 없다는 것이 유감이지만 말이다.

.........저녁에 이어 쓴다...

오늘은
가물해지는 어머니에 대한 기억 탓에
추도예배를 간단히 드리고 밥 먹으려고 했었는데...
찬송가 한장 부르고 시편 1편 이모님이랑 큰 소리로 봉독하고 새벽에 쓴 글을 이모님께 표현하다가 그만...
그리고 간절히 기도했다.
지난 1년동안 기도하고 소망했던 일이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았어도 감사할 수 있는 것을..
아무 반응 없으시고 고통 당하는 내 모습을 묵묵히 보시기만 하시는 하나님을 그래도 부인할 수 없음을..
그래서 지금 무척 평온한 마음으로 자리에 앉았다.

하나님!
저 여전히 착하죠?^^

 

 

 

 

 

(2002/11/26)
초등학교 4학년 어린이날을 앞두고 장한어머니상을 받으신 어머니께 카네이션 달아주는 장면이 일간신문에 찍혔었다. (연출된 것임^^) 특수학교로 전학가기전 초등학교에서 친구들과 찍은 사진이 하나도 없다. 소풍갈 때마다 난 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를 기억할 수 있는 유일한 사진이 여기에 있다. 정가운데 찍힌 얼굴이 당시 우리반 반장이었던 남숙이네. (얼마전 동창회에서 봤다.^^) 그리고 우리 4학년5반 친구들.....

또 1년이 흘렀고 이 날은 변함없이 찾아온다. 4년째 공개적으로 이 페이지를 쓰다보니 4년간의 삶의 모습이 순식간에 흘러간다. 그렇게 1년전에도, 2년전에도, 또 3년전에도 다짐을 했었구나. 작년과 마찬가지로 내겐 변한 것이 없이 이 날을 맞았다. 공교롭게도 아버지는 또 병원에 계시고, 동생도 외국에 있고....

며칠전 어머니가 아버지를 만난 날을 이모님과 아버지께 번갈아 들었는데 두분이 그 일을 똑같이 기억하고 있어 내 머리 속에 너무 자연스럽게 그려졌다. 교회 근처에서 바느질을 하고 계시던 이모님께 아버지가 수선할 옷을 맡기셨단다. 이모님은 아버지가 혼자 사는 집에 냄비 하나 수저 하나 놓고 살지만 바느질삯을 현금으로 항상 지불하는 게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당시 부산 영도는 전쟁을 피해 남하한 이북사람들이 판자촌을 형성하며 살고 있었던 60년대초니까 모두들 배를 채우지 못해 사는 게 사는 게 아닌 그 당시의 생활을 상상 못할 바가 아니다. 아버지는 일해서 번 돈으로 동네 아이들 사먹이고 함께 월남한 이웃들이 어려우면 그저 줘버리고 없으면 없는대로 살던 분이라 몇 푼 안 되는 바느질값을 빚지고 살지는 않으셨을 것이다. 5년을 지켜본 이모님이 어머니를 중매했다. 당시 고향 여주에서 내려와 동네 사람들 입에 하얀 피부를 가진 새색시로 소문이 나고 있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여자 얼굴을 정면으로 쳐다보지 못할 만큼 숫기가 없어(^^) 명신교회에 이쁜 색시가 새로 왔더라는 소문만 들었었단다. 식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합의하에 그냥 냉수 하나 떠놓고 살림을 차린 집이 누나와 나, 그리고 동생이 태어났던 신선동집--지금 사는 집 아래 4번째집^^--이다.

어머니는 나를 업고 학교를 다녔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아파서 학교를 못 가면 전화도 없던 시절 어머니는 학교에 그 사실을 알리러 가셨다. 3학년이 되어 도시락을 싸 가야 했을 땐 어머니는 도시락을 싸서 일부러 찾아오셔야 했다. 왜냐하면 내가 혼자서 화장실을 갈 수 없었기 때문에 그 참에 용변을 보게 하기 위해서다. (어제 도착한 책 "큰일났다 똥이 마려워"를 받자마자 다 읽었다. "진우"란 이름 때문에 주문했다는 에피소드는 게시판에 올렸었는데 정말 비슷한 상황이었다.)

특수학교가 개소한다는 소식을 들은 어머니는 4학년 6월말에특수학교로 나를 전학시켰다. 등교길엔 통학버스가 정차하는 아랫로타리까지 출근하시는 아버지가 함께 했지만 하교길엔 그 먼 아랫로타리에서 어머니와 함께 걸어올라왔다. 잘 걷지도 못하는 내가 그 가파르고 먼 길을 걸어올라올 때 내뱉은 짜증을 다 받아주고 또 일정구간은 업어주시면서......겨우겨우 하루를 살아가던 가난한 집에서 600원의 육성회비의 몇 배에 달하는 매달 통학버스이용료가 얼마나 큰 부담인지는 잘 몰랐던 시절이지만, 잘 사는 집 부모님들이 선생님들께 해드리는 것을 할 수 없어 어머니는 대신 1주일에 한번씩 학교를 찾아와 걸레질을 해주셨다. 결국 병을 얻으신 것은 내게 투자하신 시간이 너무 많아서라는 자책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일이다.
왜 여자는 어머니가 되는 걸까? 어머니가 아닌 한 사람의 인간으로 남아서 자기가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살면 그게 더 좋았을텐데...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럼 어머니는 그런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되었을테고, 그렇게 빨리 세상을 뜨지 않으셔도 되었을텐데...
어제 어머니를 잃은 친구가 있지만 그렇게 오래라도 살아보지 못하고 돌아가신 어머니가 오늘따라 더 가슴아프게 다가오는 것은 이 글을 쓰고 함께 올리기 위해 시간을 들인 포토샵작업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클로즈업한 어머니의 환한 얼굴이 바로 눈 앞에 있는 듯 떠오른다. 카네이션을 다는 모습을 찍겠다는 사진기자의 요청에 친구들이 홍말을 하고 올라앉아 어머니 가슴에 카네이션을 꼽던 그 순간의 얼굴이 말이다......

(2001/11/26)

1년 365일 중 가장 중요한 날이 뭐냐고 질문한다면 사람마다 의미있는 날들을 떠올릴 것이고 대부분은 자신의 생일이나 결혼기념일 등등을 얘기할 것이다. 그런데 난 11월 26일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이 날은 바로 20년 전 겨우 마흔 아홉해의 짧은 세월을 사신 어머니께서 하늘 나라로 먼저 가신 날이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이북에서 두고 내려온 할아버지, 할머니의 생신을 기억하지 않는다고 우리 남매를 야단치셨다. 아버지에게는 누구보다 소중한 부모님이시지만 한 다리 건넌 우리 남매들에게 한번도 뵌 적이 없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존재는 너무 추상적이라서 한번도 제대로 그분들의 음력생일을 챙겨드린 적이 없었다. 그런데 90년대에 태어난 우리 사랑스런 조카들이 81년에 돌아가신 외할머니 되는 우리 어머니를 우리 남매들이 그랬듯이 소중히 생각하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드니까 그동안의 아버지의 다그침이 이해가 되었다. 내가 그토록 소중하게 생각하는 분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같은 깊이로 소중하게 여기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운 것이다. 역지사지를 나이가 들어서야 깨닫는 이 어리석음.

대학시절 외엔 늘 어머니 추도일에 가족이 모여 예배를 드렸다. 그런데 오늘(2001/11/26)은 이모님이랑 둘이서만 예배를 드리게 된다. 뿔뿔이 흩어진 우리 식구는 이 소중한 날에 한 자리에 모이기도 어려운 것이다. 너무 피곤해서 눈이 감기는 지금 어떤 말씀으로 아침 시간을 맞을까 전혀 준비된 것이 없다. 그래도 1년 중 그 어느 날보다 의미있는 이 날에 나는 또한번 감사와 반성과 다짐을 하게 될 것이다. 점점 가물가물해지는 어머니의 얼굴을 다시 떠올리며, 아픔을 참으신 채 낳아주시고 길러주셨던 어머니의 분신으로서 이 세상에 사는 날동안 어머니를 대신해 더 값지고 아름답게 살아가리라고.....

(2000/11/26)

홈페이지가 1년 넘게 운영되다보니 1년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눈으로 확인케 되는 좋은 점이 있다. 오늘(2000/11/26)은 어머니의 추도일이다. 작년에 쓴 글이 생각나고 작년의 기억들이 쉽게 떠오른다. 이 날 우리 집은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 대신 온 가족이 모여 함께 가족예배를 드린다. 올해는 마침 주일이라 누나네 가족이 참여할 수 있게 되었지만 해외에 머물고 있는 동생이 없어 100%는 아닌 게 좀 아쉽다.

어머니가 돌아가신지 벌써 19년. 참 시간이 많이 흘렀다. 많은 변화도 있었고...지난 19년 동안  이 날 예배를 드릴 때면 한번의 예외없이 우리 가족은 눈물에 잠긴다. 그 눈물이 한탄과 후회의 눈물은 아니지만 어쩜 이 땅에서의 생을 함께 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지워지지 않아서 일 수도 있고, 어린 시절 가난 속에서 어렵게 살았던 기억들 때문에 요즘 누리는 생활들을 맛보지 못하고 먼저 가신 것에 대해 우리 모두가 가지는  미안함의 표현일 지도 모르겠다.

어머니가 간경화로 돌아가시기 전 서너차례 입원하실 때 어머니께 할 수 있다면 내 간을 대신 드리고 싶다며 기도했던 일이 생각난다. 나 때문에 고생하셨고 나 때문에 다른 이들과 "다르게" 사셨다는 자책감이 당시 어린 나의 마음에 큰 자욱으로 남았었다. 그래서 남에게 피해주지 말고 살자는 나의 좌우명은 자연스럽게 내 머리에 자리를 잡았다. 나로 인해 또 다른 인생들이 "다르게" 사는 것에 대한 부담을 지울 수가 없는 것이다.

옛날 우리 집은 추위에 무방비인 보로꾸집이라 연탄아궁이에서 올라온 열기는 방 아랫목 한 곳만 따뜻하고 멀어질수록 시베리아를 연상케 해서 이불을 덮고 있어도 추위에 떨던 곳이었다. 그러나 우리집은 웃음꽃이 가득했다. 도대체 저 집에는 뭣 때문에 저렇게 웃고 난리를 피나 동네 사람들이 의아해할 정도로 행복한 가정이었다. 어머니는 웃음을 참지 못하셨는데 한번 터뜨린 웃음 때문에 가정예배 드릴 때 수습이 안 되었던 기억이 지금 나를 미소짓게 한다.

인생이란 시계는 절대로 돌이킬 수 없다. 후회는 하지만 다시 돌아가지 못한다. 그래서 어머니를 떠올리는 이 날 그 시절로 돌아가기를 소망하지 않는다. 그 기억 속에 침잠해 있는 게 아니라 행복하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고 순수함을 잃지 않는 마음을 다지는 이 날이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이 날 예배를 드릴 때 우리는 과거에 머물지 않는다. 언제부터인가 내가 주도한 이 날 예배에는 우리 가정이 어떻게 살 것인가를 되묻는 말씀을 나누곤 한다. 오늘 난 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우리 가족과 나눌 것이다. 이 글을 읽은 나의 사랑하는 "사이버친구"들에게도 함께 하는 말씀이기를 원한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하나님이 이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사 사람으로 그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전도서 7장 14절)"

(1999/11/26)

18년 전 오늘에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그 날은 목요일이었고, 중3이던 나는 당시 건넛방에서 TV를 보고 있었다. 요즘 MC제왕으로 군림하던 서세원이 한참 부각되고 있던 시절 "영11"이란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었다. 아버지와 이모님이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말을 전했다. 난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병원에서 구급차로 집으로 모셔오셨을 때 이미 가망이 없다고 했다지만 그렇게 빨리 어머니가 돌아가실 지는 몰랐다. 그러고 보니 한 달 입원하는 동안에도 어머니를 뵙지 못했다. 어머니가 입원하기 전에 어머니의 음성을 들었던 게 마지막이었다. 소식을 전해 들은 동네 어른들 교회 어른들이 집을 찾으셨을 때 그 때야 나는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아 어머니가 진짜로 돌아가셨구나........

장례를 치르고 돌아와서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주일 예배에 참석해 소식을 들은 친구들이 위로의 말을 전할 때도 담담했다. 그리고 삼일만에 학교를 갔을 때 어색한 친구들의 표정에도 불구하고 평범했었다. 그러나 하교길 집에 돌아온 나는 나를 반기던 어머니를 더 이상 만날 수 없음에 하염없이 눈물 흘렸던 기억이 되살아 난다.

과거를 기억한다는 것은 어쩜 아픔입니다. 그러나 다시금 소중한 사랑을 기억케 됩니다. 저랑 같은 기억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저처럼 느끼시고 아직 생존하시는 부모님을 두신 여러분께서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부모님께 여러분의 사랑을 전하시길 당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