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쓰는 나의 일기는 매우 간결하다.
"날이 좋다. 출근해서 일처리하고 귀가길에 이마트 들러 쇼핑 겸 저녁먹고. 홈피 업로드하고 다운받은 드라마 한 편 보고..."
하는 식이다.
이 문장에서 훗날 알 수 있는 정보는
1) 2005년 4월 00일 날씨는 맑았다.
2) 이마트에서 쇼핑했다.
3) 저녁은 외식을 했다.
4) 홈페이지 업로드하느라 시간 좀 걸렸다.
5) 일본드라마 보느라 1시간 소비했다.
누군가에게 알리고자 일기를 쓰지는 않는다.
일기는 그날 그날의 자신의 생각과 삶을 기록하는 의미일 뿐이다.
훗날 그 일기는 본인이 본다. (예외적으로 애인이나 후손에게 보여주기도 하지만)
몇 년, 몇십년이 흐른 후 들쳐본 일기장에서 어떤 흔적을 발견할 것인가.
6) 그날도 혼자였네(^^)
7) 회사일보다도 개인적인 일에 관심이 많았네.(정곡을 찌르는 부분이다^^)
99년에 쓴 일기장을 얼마전 읽을 기회가 있었다.
일부러 꺼내 읽을 여유는 없는데 책장을 정리하다가 잡은 탓에...
6년전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았을까...근데 읽으면서 서글픈 사실 한 가지를 깨달았다.
지금 내 삶에 큰 부분을 차지하는 아버지가 언급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큰 병환을 이겨내고 그 당시도 내가 매일 같이 저녁식사를 해결해드리기 위해 퇴근하자마자 집에 들어가 밥 차려드리고 나서 내 개인적인 일을 보곤 했었는데..몇 페이지를 넘겨도 아버지가 안 나온다.
한달에 한번 고신대병원에 가서 한달치 약을 받아오던 그 귀찮고 시간 많이 걸리는 일을 했었어도 일기장에 남아 있지 않다.
내 소중한 사람을 왜 언급하지 않았을까.
긴 병에 효자 없다는 속담에 부응하듯 아버지에게 시달린 시간에 지쳐 있었던 내 모습을 다시 확인했다.
맞다.
지금 내가 수년간 보였던 아버지에 대한 애착을 건강하셨을 때 조금이라도 해드렸다면...
하는 후회가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오늘도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모르는 아버지의 맑은 두눈을 바라보고 오는 길.
함께 했던 시간이 더 많을 수 있었는데...
왜 그 때는 무지개를 따라다녔었는지....
내가 묻고 또 나에게 물은 질문에 답한 적이 있다.
"행복이 무엇인가?"
"행복은 함께 있는 것이다."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
그것이 또한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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